도서관이 살아 있다 :: 2007/08/30 10:07
박영숙 / 느티나무 도서관장
http://www.neutinamu.org
(윤여준) 느티나무 도서관이라는 이름이 참 정겹습니다. 예로부터 느티나무는 마을 한 복판에 있는 나무,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로 흔히 나무의 왕이라는 뜻에서 ‘수중왕’이라고도 부르는데요, 느티나무라고 한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박영숙) ‘느티나무’하면 떠오르는 그 느낌 있잖아요. 푸근하고, 편안하고… 도서관 처음 시작할 때 이 지역은 막 개발이 시작되는 단계여서 땅만 파헤쳐 놓고, 아파트 듬성듬성 들어서고 참 황량했거든요. 그래서 이 곳에 느티나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처음에는 도서관 할 생각까지는 못했고 그냥 느티나무라는 이름으로 집 하나 만들자, 그렇게 시작했지요.
(윤여준) 도서관 시작하시면서 어려운 점이 참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박영숙) 1999년에 시작해 2000년에 개관했으니까, 이제 8년째네요. 도서관은 공공 시설이라고 생각해서 민간인이 할 수 있다는 것도 몰랐어요. 그냥 책이 있으면 좋겠다, 누구라도 책으로 둘러 쌓인 곳에서 자라면 좋겠고 동네 사람 아무나 와서 책을 빌려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다 보니 도서관이 되었어요.
솔직히 처음에는 이렇게 상가 지하실에 들어올 생각을 못했죠. 그냥 집을 하나 예쁘게 지으려고 했는데 돌아다녀 보니까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도서관 사업 담당하는 관공서가 어디인지, 소관부처가 어디인지도 몰랐어요, 공무원들도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몰랐고요. 지금도 경기도에서 도서관 사업하는 법인이 저희밖에 없거든요.
(윤여준) 처음에는 책 몇 권으로 시작하셨어요?
(박영숙) 3천 권이요. 3천 권을 꼬박 넉 달 반 동안 다니면서 샀어요. 책에만 파묻혀 지냈죠. 비싼 백과사전이나 도감 같은 것들을 먼저 골랐지요. 그런 책들은 집에서 사기 힘들잖아요. 지금 서가에 꽂혀 있는 것만 약 2만 권 정도 됩니다.
(윤여준) 도서관 시작하시면서 홍보는 어떻게 하셨나요?
(박영숙) 도서관 문 열 즈음 한창 추운 겨울이었는데 젖먹이 둘째를 업고, 큰 애 손잡고 다니면서 포스터를 붙였지요. 너무 추워서 큰 애가 완전히 꽁꽁 얼어버려 열 다섯 장쯤 붙이고 말았어요.
처음 문 열던 날, 입구에 오색 테이프를 사다 붙이고 아이들 가위를 서른 개쯤 준비해서 동네 아이들을 모았지요. 몇 아이에게 부탁하니까 금세 놀이터를 다니며 아이들을 불러왔어요. 신이 나서 테이프 커팅하고 시키지 않는데도 나서서 마이크 들고 축하합니다, 그런 얘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리고는 그 아이들이 입 소문으로 홍보를 다 해줬죠. 예상하지도 못하게 사람이 많이 왔어요. 게다가 처음 문 열 때는 아파트가 두 개 있었는데, 한 해에 한 두 단지씩 사방에 아파트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때마다 도서관에 비상이 걸려요. 하루에 스무 명도 넘게 등록하러 오니까요.
(윤여준) 아,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퍼진 겁니까? 원래 소문 중에 입 소문이 제일 빠르죠. 단 시간 에 소문이 퍼져 사람들이 많이 왔다는 얘기는 사람들이 평소에 이런 시설을 갈망했다는 뜻이겠네요. 그건 그렇고, 도서관 사업을 하신 걸 보니 관장님은 어릴 적 책이 많은 환경에서 자라셨나요?
(박영숙) 아니요, 그때는 다들 사는 게 비슷했고 저희도 4남매라 그럴 형편은 아니었죠. (웃음) 그렇지만 어릴 때 어머니께서 읽어주셨던 책을 아직도 한 권 가지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노래’라는 책인데, 짤막짤막한 이야기를 몇 개 묶은 책이에요.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오래 앓으셨는데 늘 책을 읽으시던 모습, 이야기 해주시던 기억이 납니다.
(윤여준) 저도 책을 참 좋아하는 편인데, 어려서부터 집에 책이 많았어요. 고개를 돌리면 항상 책이 눈에 들어왔지요. 제가 책을 좋아하는 건 아마도 이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말로 하는 교육 보다 자연스레 습관으로 만들어 주는 게 더 중요한 것 아니겠어요?
(박영숙) 그게 저희 전략이에요. 제가 도서관 시작한 후 8년 동안 아이들한테 책 읽자는 말을 한 세 번 정도밖에 안 했어요. 남들은 도서관장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러냐 하지만, 아이가 책으로 둘러 쌓인 곳에서 놀다 보면 자연스럽게 책을 좋아하게 됩니다.
도서관 운영한 지 8년 되었는데, 아이들에게는 8년이 한 세대에요. 도서관 처음 시작할 때 엄마들을 위한 독서 모임을 시작했었는데, 그 때 엄마 배 속에 있던 아이가 이제 학교에 다니거든요. 저희 문 열 때 테이프 커팅하던 아이들이 이제 고등학교, 대학교 갔고요.
실제로 그렇게 자란 아이 중에 저희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학생이 한 명 있어요. 물리학 전공하는 아인데 얼마 전 문헌정보학과를 복수전공으로 하면 어떻겠냐고 진지하게 말을 건네더니 수강신청을 했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책을 나누고 책을 읽어주는 사람들 속에서 자라니까 따로 독서교육 같은 거 하지도 않는데 저렇게 도서관을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게 되는가 봐요.
(윤여준) 사람이 어렸을 때 책을 통한 동기부여가 참 중요하거든요. 그런 동기들이 일생을 지배할 거에요. 그 학생이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어렸을 때 자연스레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을까요?
(박영숙) 도서관 오는 아이들 중에 어렸을 때부터 상처 받은 아이들도 많았어요. 도서관 처음 열 때 막 IMF 터지면서 아빠들이 일자리를 잃고, 엄마들이 집 나가고, 그런 일이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제일 힘든 건 아이들이지요. 그런 아이들이 우리 도서관에 오기 시작했는데, 그 때 아이들이 표정이 없었어요, 아무 것도 하고 싶은 게 없는 그런 표정이요. 아이들은 엄마가 자기를 버리면 온 세상이 나를 버린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저희가 특별히 아이를 위로해주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말 걸고 웃어주고, 이름 기억해주고 책을 건네고 편안하게 맞아 어울린 것 뿐인데, 아이들에게 다시 하고 싶은 게 생기고 대학가고, 그렇게 많이 달라졌어요. 어렸을 때부터 동기 부여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윤여준) 저는 살아오면서 책 속에서 많은 위안을 얻고, 확신도 얻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도 배웠어요. 책으로부터 늘 위로와 격려를 받았지요. 아이들도 나름대로 그런 불행한 처지에서 책을 통해 위로를 받고 꿈을 키우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드네요.
아무래도 아이들이 책을 가까이 하고 자라면 어려서부터 삶의 다양성 같은 것도 다 익히겠네요. 사실 우리나라는 다양성 보다는 획일화 하려는 모습이 많은데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고 자라면 저절로 그런 것이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박영숙) 네, 저희 도서관의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가 바로 통합이에요. 도서관의 정신을 가장 잘 표현한 유네스코 공공도서관선언에 보면 인종, 국적, 장애, 성별, 학력, 계층, 지역, 어떤 차별도 없이 누구나 지식 정보 문화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했거든요. 저희들도 늘 눈에 보이지 않는 문턱도 없애자고 생각했지요. 무료로 도서관을 운영한다고 누구나 올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예를 들어, 이 건물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계신데, 그 분은 여기가 도서관인줄은 알지만 자기가 올 곳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런 사람들에게 회원카드 만들어 드리고, 아이들 책 빌려가게 하고… 그렇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문턱이 없어지는 거죠.
8년 동안 참 많은 아이들이 찾아왔어요. 공부 잘하는 모범생,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 보호관찰 받는 아이, 초등학교만 나온 아이…그런데 그렇게 다양한 아이들이 정말 잘 어울려요. 늘 기적 같죠.
(윤여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통합이 이루어지는 군요?
(박영숙) 아이들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가르지 않고 내버려 두니까 서로 잘 어울리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유치원이나 놀이방에서도 레벨을 나눠요.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평가 받고 등급에 따라 나뉘는 것에 대해 익숙해져 버리는 거죠. 아이들은 저마다 다르지만 스스로 배울 수 있는 능력은 다 가지고 있거든요. 그런데 나눠서 가르치고, 평가하다 보니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먼저 배우는 것 같아요. 언제나 경쟁하고 누가 나를 평가해야 하고.
저는 도서관이 갖는 미덕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북돋운다’라고 생각해요.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여기 있는 책들로 스스로 세상을 배우니까 이게 굉장한 힘이 되는 거지요.
(윤여준) 북돋우면 저절로 어울리고 조화를 이루고 통합이 된다는 걸 직접 보신 거네요. 자연이 그렇듯이 사람도 저절로 조화가 되고 통합이 된다. 굉장히 좋은 교훈이네요. 그런 점에서 한 동네 한 도서관 운동을 시작하신 건가요?
(박영숙) 도서관은 시장 논리나 효율성과는 전혀 상관 없는 시설이다 보니 사회주의적 시설이라고 하는데요, 저는 그것보다는 반자본주의적 시설이라고 생각해요. 건강한 자본주의를 위해 꼭 필요한 시설인데, 이게 자본주의 시장 논리하고는 맞지 않으니 참 힘든 거죠. 지금 우리나라에 읍, 면, 동은 약 3,500개 정도인데 공공 도서관은 겨우 520개 정도에요. 그나마도 지난 10년 사이에 200개 늘었으니, 도서관을 거의 볼 수 없는 나라였죠.
저는 도서관이야 말로 공공성의 마지막 보루라고 주장하는데, 도서관이 없으니 공공성이나 통합을 몸에 익힐 기회가 없었지요. 그게 사회를 변화시킬 힘이 될 텐데요.
(윤여준) 그런 관점에서 보면 도서관은 공공성의 최후의 보루라는 점에서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이기도 하겠네요. 공공성 없이 어떻게 민주주의가 가능하겠어요.
(박영숙) 공공 도서관은 프랑스 시민 혁명 때 시작되었어요. 그전에는 왕실 도서관처럼 지배 계층들이 정보를 가두기 위해 도서관을 만들었지요. 우리나라 국립 도서관도 황국 식민화의 수단으로 조선총독부가 만들었어요. 그 뒤로도 경제성장에 발목이 잡혀 도서관에는 눈을 돌리지 못했고요.
민주주의의 기본은 자기 의지로 생각하고, 표현하고, 다른 의견들과 토론하고 합의를 이루는 것인 데 그런 훈련을 해 볼 기회가 없었지요. 그래서 저는 도서관과 같은 인프라가 없이는 민주주의라는 말도 공허하다고 생각합니다.
(윤여준) 민주주의가 오랜 시간 진화했지만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결과만 생각하고 과정은 무시했었죠. 그래서 지금까지도 우리는 정치에 있어서는 진통이랄까, 홍역을 치르고 있는 거잖아요. 결과만 가지고 싸우는 민족은 어리석다고 막스 베버가 그랬는데 이 말은 결국 원인을 가지고 싸워야 한다는 거지요. 우리는 지금까지 원인이 어디 있는지 찾는 노력을 안 했어요. 열나면 해열제, 설사 나면 지사제 이런 식이거든요. 열을 오르게 한 병의 원인을 찾으려 하지 않으니까 계속 곪아 터지는 거에요. 곪아 터지면서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반 세기 동안 한국 정치 역사가 이런 걸 되풀이 했고 지금도 그러고 있는데, 지금 말씀을 듣고 보니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려면 어린이 도서관부터 지으라고 정치인들에게 말해야겠어요. 어린이 도서관에 이렇게 깊은 의미가 있을 거라는 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박영숙) 호기심이 학습능력의 열쇠거든요. 그 열쇠만 열어주면 아이들마다 제 안에 어마어마한 발전소 하나씩 자기고 있는데 그건 내버려두고 손으로 모터를 돌리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호기심은 무디어지고 동기를 잃어버려요. 제 보기에 요즘 아이들 가장 심각한 병이 무기력증이에요. 늘 준비된 스케줄로 몰아가니까, 뭐가 좋은 지도 모르고 선택할 줄도 모르는 무기력증에 걸리는 것 같아요.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이 이런 얘기를 종종 해요. 도서관에서 하면 뭐든지 잘 된다고요. 실제로 저희 도서관에서는 그림 그릴 때도 커다란 전지부터 메모지까지 맘대로 쓸 수 있게 놓아두거든요. 페인트 붓이나 매직이나 무엇으로든 그릴 수 있게요. 그런데 학교에서는 항상 도화지에 크레파스로만 그려야 하니까 그게 없으면 아이들이 그림을 못 그려요. 그래서 여기 오면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게 많아진다고 해요. 동기 유발이 된다는 말이지요. 가르치고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 동기를 가지고 하는 거니까 굉장히 힘이 있는 것 같아요.
민주적으로 살려면 내가 주인이 되고, 나를 얽매는 것에서 자유로워야 하는데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책만 있다고 되는 건 아니고 책을 나누어야 비로소 그렇게 될 수 있지요.
(윤여준) 책을 나눈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박영숙) 책을 혼자 읽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같이 읽고, 토론하고, 서로 읽어주는 거지요. 저희 도서관에는 별다른 행사도 없고, 그저 늘 자리를 펼치고 책을 읽어주는데 그게 그렇게 기억에 오래 남는데요.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책 읽는 소리에 주술적인 힘이 있는 것 같다고 해요.
책이 참 신기한 물건이에요. 종이에 잉크로 인쇄만 했으니 온기도 없고 향기도 없는데 책을 나누면 마치 판타지에서처럼 책의 주인공들이 살아 나오는 걸 느끼죠. 밥 한 끼를 같이 먹으면서 정이 든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책을 나누는 건 꿈을 나누는 일 같아요. 몸이 아니라 정신을, 영혼을 나누니까 정말 특별한 사이가 돼요.
(윤여준) 독서회 모임이 활발한가요?
(박영숙) 저희 도서관에 꾸준히 독서 모임을 하는 독서회가 12모둠인데,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친구들이에요. 그 사람들이 자원활동 80명의 밑바탕이고요. 뭘로 꼬셔도 8년 동안 같은 요일에 와서 자리를 지키며 자원활동 한다는 건, 참 있기 힘든 일이지요.
(윤여준) 사생활의 상당 부분을 희생해야 할 텐데요.
(박영숙) 이 분들은 그게 삶의 일부가 되어서 매주 와서 책 한 권 읽고, 서로 토론하고 하는 것이 일상이 된 거에요.
(윤여준) 애들하고 엄마가 같이 와서 하나요?
(박영숙) 아니요. 엄마, 아빠가 한 번도 안 오는 아이들도 많지요. 그래서 저희들은 엄마, 아빠라는 호칭을 안 쓰고 다 아저씨, 아줌마라고 불러요. 저도 아줌마라고 부르고. 선생님이라는 말도 안 써요. 왜냐하면 도서관은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스스로 배우는 곳이 거든요. 아이들은 그 속에서 세상에 이렇게 다양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이 사람들이 우리를 평가하는 게 아니라 친구구나 하고 믿게 되는 것 같아요. 마을 곳곳이 온통 멘토들로 가득한 셈이고, 둘레에 있는 책들로 스스로 세상을 배우니까 이게 굉장한 힘이 되는 거지요.
(윤여준) 지금 회원은 얼마나 되나요? 회원들에게는 특별히 회비를 따로 받나요?
(박영숙) 만 오천 명이 넘습니다. 어른 아이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고, 모두 무료입니다.
(윤여준) 그럼 도서관을 관리하고 책을 구입하는 비용은 어떻게 하나요? 얼핏 생각해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들 것 같은데.
(박영숙) 도서관을 네 글자로 하면 ‘밑 빠진 독’이고, 다섯 글자로 하면 ‘돈 먹는 하마’라고 합니다. (웃음) 달마다 1천 만원쯤 듭니다. 사서들 인건비가 가장 많이 들고, 다음으로 책을 구입하는 비용도 많이 들죠. 도서관을 평가할 때 장서의 질이 중요한데, 저희가 장서수준이 높은 편이에요. 책을 기증받아 도서관을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처음부터 공들여 책을 골랐거든요. 그래서 멀리서도 느티나무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요. 여기 와야 볼 수 있는 책들이 있다고.
(윤여준) 느티나무 재단이 따로 있지요? 뜻있는 분들에게 기부금도 받으시나요?
(박영숙) 네, 재단은 2003년에 설립했고요, 지정 기부금 단체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사단법인이 아니라 재단법인을 만든 건 도서관이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고 자율적으로 운영하려면 기본적으로 운영할 기금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재단 이사들의 고정적인 기부로 기본 운영비를 대고 그밖에도 삼천원, 오천원, 만원 이렇게 달마다 후원하는 사람이 백오십 명을 넘었습니다.
처음 몇 해 동안은 도서관으로 자리를 잡느라 다른 생각을 못했고요, 이제 우리가 누린 만큼 나누고 알려야 할 몫이 있다는 생각에 ‘도서관친구’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도서관 서포터즈라고 할 수 있는데, 여러 기업을 도서관의 친구로 삼아 마을마다 이런 도서관을 만들려고 하는 거지요. 친구라는 말이 참 좋잖아요. 외국에는 Friends of the Library 라는 그룹이 무척 많습니다.
도서관 역사는 도서관이 불태워진 역사라고 할 수 있죠. 정복자들, 지배자들이 항상 도서관을 불태우면서 또 한쪽으론 지배를 위한 수단으로 도서관을 만들었어요. 도서관이 공공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공의 재원을 들여야 하지만 독서와 배움에서 자율성과 즐거움을 누리려면 민간의 역동성, 자유로움, 자발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도서관의 친구에서 그 가능성을 봅니다.
(윤여준) 지금 씨를 뿌린 게 당장 수확을 못한다는 점에서는 밑 빠진 독이라고 할 지 몰라도, 이렇게 확실한 투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박영숙) 밑 빠진 독이라고는 하지만, 그 빠진 독으로 넣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게 끝없이 솟아나지요. 실제로 동네에 도서관이 하나 생기면서 많은 게 달라졌어요. 해마다 어린이날 김밥잔치를 하는데, 어른이나 아이나 가르지 않고 아무나 와서 김밥을 싸요. 김밥을 싸서 자기가 먹는 게 아니라 같이 모아서 잔칫상을 차리고 나눠 먹는 거죠. 아저씨들이 그런 얘기를 해요. 참 신기하게도 힘들게 놀이동산 데려 가고 백화점 가서 선물 사주고 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정말 좋아한다고요. 그러면서 여기가 고향이 되는 것 같다고 해요. 아파트만 빽빽한 단지가 고향이...
(윤여준) 대개 다 병원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라 고향이 없는데 여기가 고향이 되는 군요. (웃음) 다가오는 시월에 새로 도서관을 지어 이사한다면서요? 공간이 넓어지면 여러 모로 편해지시겠지만 관리하는데 비용이 더 많이 들지 않겠어요? 재단 이사 수를 늘리셔야 하는 건 아닌가요? (웃음)
(박영숙) 돈도 많이 들고 관리할 일도 늘겠지요. 그래서 다음주에 저희 집이 그 옆으로 이사를 가요. 하다 못해 눈이라도 오면 얼른 가서 치워야 하니까 집도 가까이에 있어야 하겠더라고요.
재단 이사보다 도서관의 친구들을 늘려야죠. (웃음) 도서관의 친구가 그냥 기부만 하는 것이 아니고요 기부하는 사람이나 회사들과 서로 오가면서 다양한 독서 행사도 하려고 해요. 그렇게 하면서 도서관문화가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도서관 운영한지 십 년도 안되면서 이런 말 하는 건 그렇지만 저는 도서관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편하게 와서 책을 나누고 일상을 나누는 마을도서관 하나씩 생기면 세상이 조금은 좋아질 것 같아요. 그래서 느티나무라는 이름이 더 귀합니다. 마을을 대표하잖아요.
(윤여준) 긴 시간 여러 모로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도서관 개관할 때 꼭 다시 한 번 찾아 오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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